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르트만 그라서 (문단 편집) === 북아프리카에서 === 1942년 11월, 그라서 대위는 자신의 비행단을 이끌고 열사의 [[북아프리카]] 전선으로 이동했다. 곧바로 다시 과거의 숙적 영국 공군과 맞붙게 된 그는 [[튀니지]] 상공에서 12대를 격추시켜 마침내 100대를 넘겨 103대라는 초인적인 무공을 세우게 된다. 이로서 그는 루프트바페에서 31번째 100대 격추 달성자가 되었다. [[1943년]] 6월 7일에는 그간의 혁혁한 전공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 한동안 [[파리(프랑스)|파리]]에서 후방 근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, 이곳에서 그가 맡은 보직은 제4비행사단(4. Jagddivision) 본부의 참모 장교였다. 8월 31일에는 그의 훈장에 떡갈나무잎이 덧붙여졌고, 이것은 전군에서 288번째로 주어진 곡엽 훈장이었다. 또한 [[소령]] 진급도 이루어졌다. 몇 달간 후방에서 서류와 전투를 벌이던 그는 해가 바뀐 [[1944년]] 4월 28일에 제국 방어전(Reichsverteidigung)을 수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, 제1전투항공단([[JG 1]]) 예하의 제3비행단(III./JG 1) 지휘관 책무가 떠맡겨진다. 사실 소령인 그에게 항공단장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, 미군 [[폭격기]]와 싸우다 부상을 입고 물러난 프리드리히 에베를(Friedrich Eberle : 33대 격추) 대위의 공석을 메꾸는 조치가 시급했던 탓으로 보인다. 그라서 소령은 잠시 부대를 이끌다가 5월에 새로 부임한 에리히 보이트케(Erich Woitke : 1912~1944 / 30대 격추) 대위에게 다시 비행단장직을 물려주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